
나는 누구. 여긴 어디.
2020년 5월 초, 첫 숙소 임대 계약을 했다.
5월은 준비 기간으로 흘러갔다.
6월부터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했다.
초보 사장은 한 달의 웜업 기간을 보내고 성수기를 맞았다.
일찍 퇴실하는 고마운 손님의 객실부터 청소가 시작된다.
주방, 화장실, 침실, 거실, 바베큐장 순으로 빠르고 기계적인 손놀림이 이어진다.
세탁기와 건조기는 쉴 새 없이 돌아갔고 해가 좋은 날은 볕에 이불 빨래를 말렸다.
야외 수영장 관리를 위해 전용 약을 넣고
바닥의 이물질은 수영장 청소기로, 물에 뜬 이물질은 뜰채로 건져냈다.
분리수거와 쓰레기를 정리한 후 늦은 점심을 먹고
각 객실에 오늘 들어올 손님의 비품과 침구를 올려놓고 나면
입실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손님들을 맞이할 시간이 된다.
손님들이 각자의 객실에 들어가고 나면
관리실에 에어컨을 틀고 대자로 누워 잠시 땀을 말린다.
건조기에서 나온 이불과 수건을 개고 나면 슬슬 바베큐 시간이 다가온다.
바베큐 숯불 서비스를 마치면 대략 저녁 8시,
비로소 개운하게 땀을 씻어낼 시간이다.
반복되는 성수기의 매일을 버티게 해준 건
손님이 다녀간 다음 날 입금되는 정산이었다.
프리랜서로 일 할 때, 회사에 출근할 때, 늘기는커녕 줄기만 하던 통장의 잔고가.
극성수기 때는 하루에 백만 원 가까이 정산되니 없던 힘이 솟았다.
성수기의 막바지 8월 15일, 마지막 피크라고 할 수 있다.
경주에 남는 방이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밤 10시 쯤 1층 객실 손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희 객실 화장실에 좀 와보셔야겠어요.”
물기까지 말끔히 훔쳐냈던 화장실 바닥에 배설물이 둥둥 떠 있었다.
“어머나, 왜 이러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안고 관리실로 돌아와 이전 임대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거기 배수가 좀 안 좋아서. 손님 많을 때 스파하고, 샤워하고, 물 한꺼번에 쓰면 역류하기도 했어요.”
알지도 못한 사실이지만, 지금 내가 책임져야 할 상황이었다.
인터넷에 ’24시 배관 설비’를 검색하고 떨리는 손으로 차례대로 전화를 걸었다.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기사님의 시간은 40분.
일단 관리실에 있던 시원찮은 도구들을 모아서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쓰레받기로 오물을 걷어내 변기에 붓고 물을 내렸다.
변기 아래 매지에서 누런 물이 꼬물꼬물 새어 나왔다.
걸레로 바닥의 오물 물을 닦아냈다.
‘이렇게라도 우선 치워봐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2층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화장실 바닥에 배설물이 쌓였다.
부부와 아이 둘의 가족 손님이었는데, 전화했던 아주머니의 소리가 들렸다.
“아우, 이게 뭐야 도대체.”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 마당에 나와 기사님께 다시 전화를 걸었다.
“10분 정도 남았어요, 다 왔어요.”
후두둑 후두룩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사님은 십중팔구 배수관에 이물질이 쌓여 그럴 거라고 했다.
오수관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때까지 ‘오수관’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빗속에서 오수관을 찾아 기사님과 나는 마당을 뛰어 다녔다.
“보통 이쯤에 오수관이 있는데 이상하네.”
야밤에 포항에서 달려와 준 기사님을 더 헤매게 할 수 없었다.
11시가 넘었지만 안면 몰수하고 집 주인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어 오수관의 위치를 물었다.
이 집 오수관은 보통 있어야 할 자리에 왜 없었을까.
오수관을 찾고 변기를 뜯어내고 거대한 모터가 달린 기계가 객실 화장실에 들어왔다.
“우리 어떻게요! 이 밤에.”
“죄송합니다.. 전액 환불해드리겠습니다.. 제가 다른 숙소 객실 남은 게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가까운 숙소부터 전화를 걸어봤지만, 오늘은 8월 15일 이었다.
문득 관리실에서라도 손님을 재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을 체크하고 주방을 정리하고 새 이불을 준비했다.
관리실에 흩어져 있던 개인 용품은 대충 큰 비닐 봉투에 쓸어 담았다.
“우리 가요! 이런 데서 어떻게 자.”
나가보니 가족 손님은 차에 짐을 싣고 있었다.
나는 얼른 관리실에 뛰어 들어가 내일 조식에 드릴려던 것들을 쇼핑백에 담았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늦은 밤에.. 아이들 이거라도.. 먹으면서 가세요.”
12시가 넘어 그렇게 손님들은 떠났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최악의 날은 아직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 살아있다.
집을 사던 짓던, 나는 배관, 난방, 전기 설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돈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빗속에서 같이 뛰어다닌 기사님은 낯선 경주에서 처음 생긴 기댈 곳이었다.
통장 잔고 뿐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모든 날이
감사한 날이 되었다.
소규모 ‘타지 출신 숙소 사장 모임’에서는 각자의 고생담을 털어놓는 시간을 종종 가지는데
우리의 결론 항상 같다.
“사람 안 다쳤으면 그걸로 됐어, 다행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