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여름 날, 애순이가 삼남매를 데리고 우리집 마당에 왔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앞집에서 6월 초 삼남매가 태어났다고 한다.
앞집 부부가 해외여행을 떠나자, 애순이는 다음 타깃을 찾은 것이다.
단호하고 야무지게 생긴 애순이와 달리 삼남매 어린 고양이들은 순둥순둥, 무늬도 알록달록 예뻤다.
마당 집도 처음이고 고양이도 낯설던 나에겐 이 상황이 무척 부담이었다.
엄마는 20킬로 짜리 고양이 사료를 들고 와서 밥 담당 임무를 주었다.
다음 날 애순이는 현관 앞에 손가락 만한 쥐를 물어다 놨다.
‘아.. 제발!’ 이런 마음이었는데,
엄마는 ‘고양이의 보은’이라며 애순이를 칭찬했다.



삼형제를 구분하기 위해 이름이 붙여졌는데, 콧수염, 이쁜이, 못난이였다.
콧수염은 실제 콧수염 같은 털무늬 때문에
이쁜이는 삼색이로 실제 젤 예뻐서
못난이는 셋 중 젤 못나서.
지금 생각하면 애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네이밍.
길고양이에게 물린 적이 있는 나는 이 삼형제가 귀여우면서도 달갑지 않았다.
애순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췄다.
우리 집 마당에 삼남매를 남겨둔 채.
이듬해 봄이 오기 전까지 삼남매는 추운 겨울을 똘똘 뭉쳐 잘 보냈다.


초봄 어느 날, 못난이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콧수염, 이쁜이만 호기심에 들여다보고,
못난이는 새끼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지켜보는 사람만 애가 탈 뿐이었다.
“사람 손 타면 자기 새끼 안 돌보니, 그냥 둬야 해.”
엄마의 말에, 아무렴 제 새끼인데 알아서 잘 하겠지 싶었다.
초봄의 새벽은 아직 쌀쌀해서 제발 못난이가 새끼들을 잘 품어주기를.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못난이 새끼 두 마리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못난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야속했다.
그 해 봄에는 못난이 새끼를 비롯해 여러 길고양이 새끼들을 땅에 묻어줘야 했다.
삼형제 크는 모습을 지켜보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는데,
어린이 고양이가 되기 전까지는 생사를 넘나드는 야생의 시간이 있었음을 난 알지 못했었다.

6월이 되자 다시 애순이가 나타났다.
애순이를 똑 닮은 네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과 함께.
‘애순아, 너 호구를 제대로 잡았구나.’
애순이는 이번에도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그냥 죽은 쥐도 싫은데, 머리 없는 죽은 쥐.
애순이와 새 새끼들이 뒷마당에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콧수염과 이쁜이는 홀연히 사라졌다.
한 살이 다 되어서는 며칠씩 집을 비우고는 했는데,
안 보인다 싶더니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들은 열 마리 남짓 했다.
대부분은 밥만 먹고 사라졌다.
못 보던 애가 불쑥 나타나기도 하고, 정들만하면 사라지곤 했다.
못난이는 한참을 안 보이다가 다쳐서 돌아왔다.
싸운건지 어쩐건지 목 둘레에 상처가 깊어 보였다.
강아지 염증 약을 고양이캔에 타주며 고운 정, 미운 정 들어갔다.


겨울이 다 되어 가는데 못난이 배가 또 불러오고 있었다.
몸도 약하고 입도 짧고 새끼도 잘 못 돌보는 너가, 또.
엄마는 새해가 되면 시에서 하는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꼭 신청하라고 당부했다.
못난이는 추운 1월, 비실비실한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데리고 다시 찾아왔다.
눈꼽인지 뭔지 모를 딱지 때문에 눈도 잘 안 떠지고, 여신 켁켁대며 기침을 했다.
못난이도, 세 아기 고양이들도.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다시 땅에 묻어지고 나서야
못난이와 두 아기 고양이는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택배용 스티로품 박스와 헌 옷가지들로 세 식구는 겨울을 났다.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 공지가 뜨자마자 동사무소로 향했다.
못난이를 위해서라도 중성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 개의 트랩이 설치되어 세 마리의 고양이가 중성화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그 중 못난이는 없었다.
밥을 주기는 해도 만지거나 안아본 적은 없기에 내가 중성화 대상을 고를 수는 없다.
벚꽃이 필 무렵,
“얘 또 임신한 거 같다.” 엄마가 말했다.
“아직 애기들이 이렇게 어린데?” 혼란스러웠다.


한 차례 벚꽃 시즌이 지나고,
아침에 현관 문을 열고는 ‘악’소리도 내지 못할 광경을 보게 됐다.
갓 태어난 고양이 새끼 세 마리가 죽은 채로 현관 계단에 널브러져 있었다.
한 마리는 빨간 태반이 채 마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게 말이 되나.’
세상에 나오자마자 어미에게 버려진
불쌍한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고이 묻어주었다.
못난이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다시 현관 문을 열었을 때.
힘 없이 축 처진 못난이와 죽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박스 안에 있는 걸 보게 됐다.
‘이틀 간 분만이 가능한가.’
뭔가 잘 못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장갑을 끼고 한 손으로 못난이를 쓰다듬으며
나머지 한 손으로 죽은 새끼 고양이 꺼내 땅에 묻어주었다.
못난이는 미동도 않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물도 먹지 않았다.
헌 옷을 뒤져다가 못난이를 덮어 주었다.
다른 고양이가 볼까 싶어 박스 위를 다른 박스로 덮어 주었다.
‘그래 고생했어, 좀 쉬어.’
엄마랑 통화하고, 제미나이에게 상황을 물어보는 사이
못난이는 사라졌다.
오후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세찬 비가 내렸다.

다음 날.
못난이는 이런 모습으로 박스 안에 들어가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동물보호센터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이야기 했다.
사진을 찍어 보내 달라고 하고, 잠시 뒤 구조대가 올 거라는 답변을 들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못난이가 다시 사라질까 봐 옆을 지켰다.
못난이 상처에 파리가 날아들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까마귀까지 마당 위를 빙빙 돌았다.
구조대가 도착하고 못난이가 케이지에 담겼다.
“아직 배가 불러 있어요.”
“그럼 뱃속에 한 마리 더 있는 건가요?”
“난산이네요. 뱃속에서 죽어 있을 수 있어요.”
얼마나 고통스러운 사흘을 보낸 거니.
빨갛게 충혈된 못난이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 채, 차는 떠났다.


다음 날 통화했던 번호로 문자를 남겼다.
‘고양이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상태가 좋진 않습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아직 살아 있구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못난이 새끼 한 마리가 마당에 남았다.
같이 있던 형제는 보이지 않는다.
형제도 어미도 떠난 마당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어린 고양이 모습이 안쓰럽다.
‘힘내. 힘내자 우리.’
“난 강아지가 좋아. 고양이는 눈을 치켜 뜬다고.”
애순이네 대 가족을 만나기 전 나의 멘트다.
2년의 시간이 흐르고
‘고양이에 관한 모든 것.’이란 3시간 짜리 영상을 거뜬히 본다.
마음을 주지 않으려 해도 정이 겹겹이 쌓여
‘좀 더 적극적으로 못난이를 돌봤다면, 어땠을까.’
생과 사는 하루 차이.
다른 생명의 생과 사 사이에 놓인다는 건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다다르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