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경주.
안녕하세요, 경주는 처음입니다.
첫 숙소의 이웃은 60대 부부가 사는 가정집이었다.
동네에서 장사를 시작하는 셈이니 뭐라도 돌리는 게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사 떡도 돌려본 적이 없는 나는 ‘굳이?’ 생각했다.
옆집 아주머니는 “새로 하시는 분?” 물으며 찾아오셨고
대뜸 호구 조사를 시작하셨다. “남편은? 애들은?”
‘익명성을 찾아 500km 넘게 달려 경주로 왔거든요..’ 속으로 생각했다.
우편함을 달고 페인트 칠을 새로 하며 문득 옆집 아저씨의 눈길이 느껴지곤 했지만,
이어폰의 볼륨을 높이며 작업에 집중했다.
낯선 이들이 매일 찾아오는 숙소는 필연적으로 옆집에 불편함을 줄 수밖에 없었다.
1인 1차로 오시는 손님들이 있는 날에는 주차장이 모자라 옆집 언저리까지 주차 안내를 하게 됐다.
2층 객실 바베큐 테라스에서는 옆집 마당이 훤히 내려다 보였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일회용 접시며 뭐며 떨어지곤 했다.
선선한 날씨에는 테라스의 손님들이 늦도록 여행의 밤을 즐기곤 했다.
초보 사장에게는 조금 더 두꺼운 얼굴과 밝은 인사성이 필요했다.
명절에 김 선물 세트를 사다가 옆집과 앞집에 인사를 했다.
2만원 선물 세트의 위력은 내 생각보다 강력했다.
“직접 키운 나물이야. 맛있어.” 더 귀한 것을 돌려받고는 머쓱 했다.
이후 “우리 시어머니는 말이야..” 옆집 아주머니의 방문이 잦아졌다.
‘오, 우리 사이의 안전거리가 또 필요해지고 있어요.’ 속으로 생각했지만,
너스레를 떨며 수다를 이어나갔다.
나만 안되는 거였어?
두 번째 숙소는 불국사 근처의 마당이 있는 한옥이었다.
내 생애 첫 주택 구매, 손가락이 아프도록 검색한 보람이 느껴지는 따뜻한 공간이었다.
중개업자의 말로는 목수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직접 지은 한옥이라고 했다.
여느 촌집처럼 다닥다닥 이웃 집과 붙어있지도 않았고
마당을 둘러 담장이 쳐져 있어 오붓한 느낌이 좋았다.
한옥 옆으로 바베큐하기 딱 좋아 보이는 커다란 테크가 있었고
주방과 화장실까지 갖춰진 간이 건물이 따로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숙소에 알맞게 내부 인테리어를 하는데 한 달 정도 걸렸다.
손님 맞을 준비를 마치고 시청에 달려가 농어촌민박 사업자 신청을 했다.
며칠 후 시청에서 현장 방문을 나왔다.
“바베큐장은 불법 건축물 맞죠? 철거하셔야 사업자 나옵니다.”
“불법 건축물요?”
다시 시청에 달려가 건축물대장 도면을 떼어보니, 바베큐장은 도면 어디에도 없었다.
인테리어 업체에 전화했다.
“내일이 주말인 건 알지만 최대한 빨리 제 바베큐장을 부숴주세요!”
이틀 후 간이 주방과 화장실은 철거되었고 더 넓어진 데크만 덩그러니 남았다.
일주일 정도 늦어지긴 했지만 사업자는 나왔고
코스트코 천막을 바베큐장 삼아 숙소 운영이 시작됐다.
“이렇게 된 거 한옥 풀빌라로 가보려고요!”
뜻하지 않게 리모델링을 넘어 별채 신축 공사에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경주에 풀빌라는 더러 있었지만 한옥 풀빌라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어쩌다 보니 선두 주자가 되어 유행을 잘 타긴 했다.
“너 그 얘기 들었어? 농어촌민박 연면적 기준이 70평(230㎡)이잖아.
아무개 사장이 평수 오버 된 걸 시청에서 들어눕다시피 해서 사업자 받았다더라.
담당자에 따라서 다른가 봐. 넌 좀 운이 없었다.”
난 운이 없는 게 아니다.
난 시청에서 눕지 않는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 숙소 때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렸고, ‘비대면 체크인’이라는 말이 생겼다.
청소를 마치고 손님에게 그 날의 도어락 비밀번호를 문자로 보내면 오늘의 할 일은 끝난다.
즉, 오후 3시가 되면 퇴근이다.
“모임 같은 데 좀 나가볼까 봐.” 알아보니
경주박물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대학’이라는 멋진 문화 강좌도 있었고
동궁원 ‘식물아카데미’도 재밌어 보였다.
청소 시간 이슈로 생각보다 맞는 시간대가 없었다.
한 리조트에서 하는 ‘어반스케치’ 강좌가 나를 설레게 했다.
열 명 내외니까 인원도 딱 적당해 보였고
사진으로만 담았던 경주의 이곳저곳을 내 손으로 그릴 수 있게 된다면
그보다 멋진 일이 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첫 수업에 들어서니 할아버지 화백이 맞아 주셨다.
수업이 시작되고 5분 정도 후에 한 여성 분이 다행히도 나타났다.
“그림의 기본은 선이예요, 선.”
미술 연필로 스케치 노트에 선을 채워오라는 숙제를 받았다.
그 다음 수업에 가보니 이제 수강생은 나 혼자였다.
황리단길에서 하는 청년 소상공인 프로젝트에 관심이 생겨 나간 적이 있다.
저마다 하고 있는 사업, 혹은 준비 중인 사업 아이템을 발표하고 함께 이야기 나눈다고 했다.
대학 졸업 이후 얼마 만인지.
‘숙소도 여행의 일부, 혹은 전부일지도.’ 대략 이런 내용으로 발표 자료를 만들어 나갔다.
들뜬 마음으로 나가다 보니 모임 시간 30분도 전에 대릉원 주차장에 도착했고,
딱 5분 전 모임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 시간을 체크하며 이곳저곳 소품샵을 둘러보았다.
황리단길 골목 안쪽 옛 가정집을 개조한 모임 장소에 들어서니 참가자 대부분이 모여 있는 듯 했다.
그 자리에 모인 누구도 40대는 없어 보였다.
참가자도, 자리를 마련한 진행자들도.
그제서야 소상공인 프로젝트 앞에 붙었던 ‘청년’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 번뜩였다.
20대로 보이는 반짝거리는 눈망울을 가진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뭔지 모를 위축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렸다.
경주는 여행의 도시답게 봄, 가을 여러 행사와 이벤트가 열린다.
행사 콘텐츠를 늘 관심 있게 보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슈링클스 공예’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했다.
슈링클스는 보기에는 반투명 종이 같은데 오븐에서 열을 가하면 7배 작아지면서 7배 딱딱해지는 종이다.
첨성대 등 경주 시그니처 디자인이 그려진 슈링클스 종이에 취향껏 색을 입히고 작게 만든 뒤 모빌이나 썬캐쳐로 쓸 수 있다.
‘잘만 만들면 한옥 객실에 괜찮을 것 같은데?’
경주 굿즈에 관심이 많은 나는 8명 수강자가 채워질세라 얼른 수강 신청을 했다.
이번에도 참가자 연령대가 낮을 것 같았지만
‘원데이 클래스이기도 하고, 만드는 거니까 뭐.’
다시 도전.
하지만 이번에도 클래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8명 수강자 중에 7명이 초등학생 어린이였다.
이쯤 되니, 나를 의심하게 되었다.
나랑 관심사가 같거나 취미가 맞을 분, 혹시 경주엔 안 계신 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