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작약을 알지 못했다.
화분 몇 개를 혹하는 마음에 몇 번 사보기는 했었지만,
햇빛과 온습도 관리가 취약한 실내에서는 힘없이 시들시들 저물어가는
식물들을 보며 못할 짓이라는 결론만 반복될 뿐이었다.
하지만 마당에서 자라는 꽃들의 내공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내가 눈길, 손길 주지 않아도 알아서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봄이면 비상하게 새싹을 틔워 초여름이면 우아한 꽃을 피워냈다.
세 번의 봄을 맞이하면서 나는 작약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마당 초입에 뿌리내린 이 아이들은
겨울 이사와 공사의 흙먼지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가
초봄 죽순 같은 생명력으로 쭉쭉 뻗어 올라오더니
진분홍, 연분홍, 흰색의 다채롭고 커다란 꽃을 선물했다.
그 다음 해는 더 풍성한 꽃으로 내 눈을 사로잡아
마침내 올 늦은 겨울에는 작약을 기다리는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이제 봄이구나 싶은 어느 날, 엉뚱한 곳에 자리를 잡은 작약 새싹을 발견.
2년 전만 해도 잡초인지, 작약 새싹인지 구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는 화사한 꽃의 매력을 뽐내보지 못할 것 같다는 조바심에
한켠에 쓸모를 잃어 방치되어 있던 커다란 화분을 떠올렸다.
작약은 뿌리가 곧고 깊게 뻗으니 큰 화분일수록 좋다는 말에
‘임자가 따로 있었구나.’
다이소에서 배양토 3봉지를 사다가 화분에 채우고
삽으로 작약 새싹 주변 넉넉하게 퍼 올렸다.
새 화분으로 옮겨주고 물을 적셔주며
‘이렇게 인연이 닿았으니, 너는 이사를 가게 돼도 나랑 같이 가자.’


며칠 사이 식구가 늘었다.
눈을 부릅뜨고 마당을 훑어보니 구조해야 할 작약 새싹들이 꽤 있었다.
옮겨 심은 며칠 동안은 강한 햇빛은 피하는 게 좋다는 말에
카트에 화분을 얹어 바람 잘 통하는 그늘로 하루에 두어 번씩 자리를 옮겨줬다.
며칠은 이사 몸살을 앓아 힘없이 구부러져 있더니
사흘째부터는 제법 힘이 생기고 색도 진해졌다.


어린 새싹에게 아직 턱없이 크기는 하지만
마당에 자빠져있던 지지대도 다시 조립해 화분에 꽂아주었다.
이 만큼 쑥쑥 자라나 탐스런 꽃을 피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이사 오기 전부터 우리 집 마당에 자리를 잡았던
안방마님 작약들은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꽃을 피워낸다.
어린 작약들은 키가 자라기는 했으나 올해 꽃을 피우지는 못할 것 같다.
다음 해는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마당 집은 요란한 소리는 없어도
사부작 사부작 조용히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다.